'투명가방끈연대' 같은 조직의 反학벌주의적 투쟁이 '인문학적 학구열에 불타오르나 먹고살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는 非대학생'의 경험과 양립할 수 있다는 희망 같은게 전혀 안 든다. 결국 학문 탐구 및 연구의 자원은 대학에 있는데 왜 "학교 안 가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한단 말인가. 대학이나 연구소에 재직하지도 않고 연줄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대학도 가지 않고 독감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진짜로 명문대 출신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욕심이 많지 않다면 그렇다.
그럼, 나의 학구욕은 욕심인가?
...진짜 욕심인 것 같다. 좋은 연구자원은 다들 대학, 그것도 최고의 명문대학에나 있고, 산학연 연계나 좋은 전문가들과의 인적 교류라는 당근 역시 명문대학만의 전유물이다. 학교 어필리에이션 따위가 전혀 없는 학교 밖 개인이 별별 야리꾸리하고 딥다크한 논문 구독 서비스를 어찌 접하겠으며 좋은 교수들이나 그 교수들을 따라온 동료 학생들로부터의 도움을 어찌 받겠는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없이는 학자로 성장할 수 없다. 노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자유는 여유로울만큼 충분한 자산에서 나온다. 나도 노동에 얽매일 필요 없이 학교에 가고 싶다. 이미 충분히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하지만 남들이 정년퇴임하기 전에 내가 박사학위를 받을 수는 있을까. 대수위상수학, 대수기하학, 카테고리 같은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볼 기회가 평생 한 번이라도 얻어지기는 할까. 내게도 희망이란 것이 허락될까.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지.
I tell youngsters, if you go abroad or even if you study in Japan, choose the best scholar in the field. But don’t expect you can learn from him! The amazing thing is that with that kind of person, there are many talented young people around, and you learn a lot from them.
전 젊은이들한테 이렇게 말해요. "유학을 가든, 일본에 남든, 최고의 석학을 찾아가라. 허나 그 사람한테 많은걸 배우리라 기대하지는 마라!" 최고의 석학에게 찾아가면 좋은 점은 따로 있어요. 그런 석학 주변에는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젊은이들한테서 배울 게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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