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일런스>를 너무 감명깊게 봐서 그런가 카쿠레기리시탄의 처절한 의지 못지 않게 일본의 치밀하고 악랄했던 천주교 박해 전략에도 관심이 간다. 막부의 천주교 박해는 결과적으로 지나치리만치 성공적이지 않았는가. (참고로 카쿠레기리시탄은 일본의 천주교인, 이른바 기리시탄들이 예수의 얼굴을 밟는 '후미에' 강요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막부의 가혹한 천주교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 일대에 숨어들어 수백년간 신앙을 이어간 천주교 신자들과 그들의 전통을 일컫는다. 이들 카쿠레기리시탄은 천주교의 원류로부터 차단된채 수백년간 숨어살며 신앙을 지켜냈지만, 카쿠레기리시탄을 발견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을 비롯한 천주교계에서는 이들의 신앙적 전통과 교리가 일본의 토속 문화나 전통과 유입되어 천주교의 본류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뭔가가 되어버렸다는걸 파악하면서는 카쿠레기리시탄들에게 평생 한번뿐인 세례를 다시 주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로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근절' 및 '금기시'되어마땅한 행동을 없애고자 한다면, 일단 그런 행동을 자행하는 이들의 커뮤니티에 유입되는 신규 인력부터 원천차단해야 박해가 성공할 수 있다. 즉, 물갈이를 차단하고 저들을 고인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 내지 성노동이 지양되어야 할 불건전한 행위로 여겨지는 한, '성노동자 커뮤니티로의 뉴비 유입'은 금지되어야 하며 따라서 '성노동자들의 사회' 역시 물갈이가 없어진채 지속불능해져야 한다.
물론 인정상 성노동자들의 사회적 교류를 원천박멸할 수는 없다. 그들도 생존을 해야 한다. 생존에 필요한 정신건강과 사회활동의 차원에서 동지 내지 동업자들과 꾸준히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류의 성적 탐욕을 '쉽게 해소'할 기회를 공급함으로써 성구매 수요자들의 성윤리관 왜곡에 일조하는 성 산업을 지속가능케 방관할 수 있는가? 성노동자들은 그들끼리의 '사회적 연대와 결속'과는 별개로 수익창출과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의 측면에서는 업계를 떠나게끔 시장원리에 의해 유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작정 단속과 훈계만 반복한다고 효과가 있지는 않을테니까...)
비슷한 예를 더 들어볼까? 일론 머스크가 확 뒤흔들어놓은 옛 트위터를 𝕏라 부를지, 트위터로 부를지로 www.twitter.com 사이트에서는 대강 세력이 갈리는데, 거시적으로 보면 후자의 세력은 신규유입이 차단되어 건전한 물갈이가 불가능해진 고인물이나 다름없으니 트위터 유저의 입장에서는 탄식치 않을 수 없다. 광주대단지사건으로 대변되는 빈곤혐오에 수십년간 시달리며 한을 품은 서울 빈민 출신 성남 본시가지 주민들 사이에 뿌리내린 숭북주의자 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의 역사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외부와의 교류와 물갈이가 제한될수록, 고인물은 구정물, 썩은물로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전략에 비춰볼 때,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성판매를 시작하는 인력수급을 먼저 차단해야 한다는 성노동 담론에 대한 나의 입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성판매 경험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이들을 업계로 끌어들이려 하는 리크루팅은 무슨 이유로도 긍정되어서는 안될 성폭력이자 성착취이자 패륜이란 점엔 지구상의 인류 대부분이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성노동자들의 생존권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성산업에 종사할 뉴비 유입 및 리크루팅은 원천적으로 발본색원하여 철퇴를 가해야 한다.
p.s. 나는 근본적으로 성매매/성노동/성판매 등의 용어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성매매 종사자 내지 성노동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포주에게 고용된 성-노동자인가, 아니면 자기주도적으로 성판매에 나서는 성-자영업자인가? 이것이 명확히 규정된다면 성매매 종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좀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용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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