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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역사

<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

by JessieKhan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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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

One Man's View of the World

 

유튜브 언더스탠딩의 인기 시리즈 북언더스탠딩에서 다뤄진 바 있는 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를 읽었다.

 

리콴유라는 사람의 삶이 너무 인간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이어서 치명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나는 이 독재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온갖 복잡한 생각이 든다. 성소수자, 자폐인 등의 여러 범주에 포함되는 다양성이 전혀 존중되지 않는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어내면서도 심신이 쓸데없이 건강해서 오래오래 아시아식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불멸의 독재체제를 굴려먹은 우생학적 독재자가, 싱가포르의 국부이자 싱가포르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위대한 현인이, 과연 내게는 어떤 시선을 받아야 하는가?

 

시진핑의 독선과 아집에 대해 간과했다는 점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그의 시선은 2023년 현재 돌이켜봐도 대체로 틀린 것이 없다. 빗나갔다는 시진핑 평가조차도 나는 결국 미중 신냉전이 구냉전만큼 어처구니 없이 끝장나버릴만한 모멘텀(미국의 대호황, 레이거노믹스, 소련의 아프간 침공과 체르노빌 사태 등)을 미국이 다시 얻어내지는 못할거라 보기에 아직은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짓지도 않고 싶다. 미국에게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을 정복하고 21세기 新 중화제국을 다시 완성하는 역사적 급변사태를 막아낼 능력은 있을까? 과연 미국 달러는 글로벌 유일무이 기축통화의 위치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어떤 사주팔자를 타고난걸까? 흔히 단군할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는 말로 표현되곤 하는 한반도가 (리콴유 식으로 말하는) 대한민국의 운명이라면, 2030년대와 2040년대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다만 리콴유가 대한민국에게 미국과 중국의 이분법적 양자택일이 강요되는 사항이 이렇게까지 빨리 찾아올런지도 예상했는지까진 잘 모르겠다.

 

그와중에 아스트랄한 부분이 있다. 기후위기에의 대응에 대해 주장한 부분인데, 무슨 녹색당 독재자 같다... 싱가포르 같은 쬐깐한 나라 쬐깐한 인구규모에서 탄소배출 줄이고 환경오염 줄여봤자 무슨 큰 효과가 있겠냐고 혀를 차면서도 싱가포르는 땅 한 뼘 한 뼘이 아쉬워서라도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에 저항하고 이를 방지해야만 한다는데, 이건뭐 원전 반대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느낌...? 나중에 고이즈미 평전 같은거 나오면 읽어봐야겠는데 과연 대한민국에서 그런 책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신 아드님을 두셔서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조명하는 서적이 빨리 나올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나온다면 꼭 읽어봐야겠다.

 

리콴유가 만약 비트코인이라는걸 알았다면 어떻게 바라봤을지도 궁금하다. 리콴유는 너무 오래 전에 태어난 윗윗윗세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비트코인이라는걸 깊이 고찰했을 것 같진 않다. 그나마 리콴유네 친인척과 동지들이 굴리는 국부펀드 테마섹 홀딩스가 FTX 관련 투자금액을 3억달러쯤 손실처리했다던 일화로 미루어 짐작컨대, 고촉통, 리셴룽, 로렌스 웡 등을 비롯한 정치적 후계자들은 물론 리콴유 본인도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는 아니었겠지 싶다.

 

아무튼 그런 정견에의 호오와는 별개로, 리콴유의 사고를 보며 몹시 반가웠던 대목이 하나 있다.

 

왜냐하면,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사후세계에 존재할 소중한 이의 몰골은 어떠할까? 내가 사후세계에 보고픈 자가 내가 보고 싶어할 몰골로 존재할까? 어릴 적 부모를 여읜 노인이 사후세계에서 부모를 만난다면 자기 손자보다 어린 부모를 봐야 할텐데 부모가 볼 자기 자식은 노인일까, 갓난아기일까? // 무한히 넓은 사후세계에서 모두가 제각기 보고 싶은 사람과 행복히 영원불멸한다면, 유사 이래 모든 생물이 모든 형태로 함께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연결이 이어지다보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도 함께해야 하는 생지옥이 된다. 즉, 사후세계가 유일히 존재한다면 천국과 지옥은 동치이다...! // 결국 사후세계는 적당한 거리가 주어져야 하는 거리공간이란 말인데 나는 싫은 새끼가 이 우주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분노와 모멸감과 절망감에 치를 떨거든? 난 싫은 놈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거리가 얼마나 멀든 상관없이 그딴 씹새끼들과는 같은 우주에 존재하고 싶지 않아! // 만약 사후세계가 다양히 존재한대도 이 또한 모순이다. 내가 짝사랑하는 예전 남자친구를 사후세계에서 다시 본다면 내게 다가와 손 잡아주는 남자친구는 과연 정말로 내가 짝사랑하는 예전 남자친구라 할 수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에게 나는 절대로 죽어서도 다시 보기 싫을 인간일텐데? // 결국 누군가의 지옥은 누군가의 천국이란 말인가? 착하지만 억울하고 서럽게 산 사람들이 저번 삶에서 자신한테 못되게 군 나쁜새끼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다음 세상이란 말인가? 이건 사실상 윤회 아닌가? 이렇게 노예로 굴려먹힌 사람들은 또 다음 삶에선 거꾸로 굴려먹는다면 이 또한 지옥 아닌가? // 허나 만약 윤회에 의해 내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그 때 나는 지금 내가 싫어하는 외모와 성별과 가난과 건강 등만 쏙 빼놓고 좋아하는 것만 쏙 뽑아먹어 수학만 하며 사는 가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의 삶도 가챠의 결과일 것이다. 지금의 즐거움이 다음 생에는 괴로움일 수도 있다. 즉, 사후세계도 윤회 후의 다음 삶도 희망만 남겨놓고 절망은 없애고 불확실성도 소거해낸 이상향일 수 없다. 그러므로 내게 영원불멸히 행복한 천국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누구도 이를 반박할 수 없으셈 // 어서 하루빨리 지금의 삶을 끝내고 싶다는 죽음에의 탐욕과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많이 것을 배우고 익히고 다는 지적 탐욕이 공존하니 괴롭기 그지없다.

 

과거 내가 생각해본 내용이다. 리콴유의 사고도 저런 식으로 흘러간 적이 있다니 희한하게 반가워지고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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